정보화마을 제주 저지예술마을

  • HOME
  • 마이인빌
  • 메일
  • 고객센터
  • 서브이미지

    저청초등학교 | 저청중학교 | 저청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저청초등학교

    한경면 중산간마을에 최초의 현대교육기관으로 1938년 조수신성의숙(造水新成義塾)이 개설되고 1939년에는 조수심상소학교(造水尋常小學校)로 개편(4학년제)함으로써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던 인근 5개리(낙천, 산양, 청수, 저지, 월림) 학생들은 이 학교로 편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불편이 뒤따랐기 때문에 저지ㆍ청수에도 학교를 설립해야 할 필요성을 주민들은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해방을 계기로 하여 저지ㆍ청수 두 마을 유지들을 중심으로 학교 설립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에 이르렀고 공동으로 중간지점에 설립한다는 합의 아래 학교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먼저 저지국민학교로 인가되어 1946년 3월 저지리 단독으로 저지국민학교를 설립, 속칭 '허리왓'에 교사를 신축하고 저지리 학생들을 수용하여 교육시키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청수리민들도 산양리와 합동으로 학교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고 1947년 3월에 수룡동에 청수(淸水)국민학교를 설립, 청수 1,2구 학생들을 수용하였다. 하지만 1948년 4ㆍ4사건으로 인해 이 두 학교는 자동적으로 폐교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1949년 5월 1일자로 중산간 마을 중 해안에서 근거리 마을부터 재건령이 내려지면서 마을 재건에 착수하게 되었다. 우선, 조수리를 중심으로 임시 집단수용되면서 1949년 7월에 조수국교는 재개교 되었고, 기존의 조수국교 재학생과 저지ㆍ청수국교에 재학하던 학생들을 수용하게 되었다.

    1940년 여름부터 저지ㆍ청수리도 재건을 시작함에 따라 저청국교 현부지 내에 가건물을 짓고 조수국교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들을 수용하게 되었으며 1950년에 가서 저지ㆍ청수 주민들은 저지국교ㆍ청수국교 두 학교를 통합하여 복구하기로 합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50년 5월, 저청국민학교로 인가받아 1950년 6월 1일 저지리와 청수리의 중간지점인 현재의 저지리 1515번지에서 개교(4학년 3학급)했다. 당시 저청국교의 학구는 저지, 청수, 산양이었지만 그후 1960년대에 들어서 학교와 학구 간의거리 관계로 월림리 학생들을 저청국교로 이적되었으며 산양리 학생들은 산양국교로 이적하였다.

    따라서 현재의 학구는 저지리(중동, 남동, 성전동, 명리동) 청수리(본동, 평화동), 월림리이다. 조수국교 학구에 포함된 저지리 수동인 경우 저지국교로 이적이 논의되기도 했었으나 그럴 경우 조수국교의 학생 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학교 수의 감소는 저청국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1951년 9월 6학년 6학급으로 인가된 후 1970년 3월에는 12학급으로 인가 되었으나 1984년 10학급, 1988년 7학급, 1989년부터는 1학년 1학급 편제인 6학급으로 줄어들었다.

    저청국교는 1978년 3월부터 벽지학교로 지정(관보 6389호)되었다가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1989년 9월 1일에야 해제되기도 했다. 1996년 3월에 초등학교로 개명했으며 1999년 9월 저청초-중학교를 통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자 62명, 여자 71명 총, 133명이재학하고 있으며 졸업생은 53회까지 총, 2,847명이다.